2년 넘게 일한 파견노동자에 대해 ‘직접고용의무’를 부담하는 사업주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은 위법이라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개정된 이후 파견근로자 고용형태를 명시적으로 판단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판결로 잇따른 불법파견 판결에도 기간제나 계약직으로 고용한 유사 사건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 “무기계약직 체결이 원칙”
“파견법 직접고용의무 강행규정 위반”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TJB대전방송 MD(Master Director) 최아무개(44)씨가 방송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일 밝혔다. 최씨가 소송을 제기한 지 5년4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개정 파견법의 ‘직접고용의무’ 규정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사업주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8년 9월 옛 파견법의 직접고용간주 규정과 관련해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에 직접근로관계가 성립하는 경우 근로관계는 원칙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파견법은 2006년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직접고용간주 규정에서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강행규정으로 개정돼 이듬해 7월 시행했다.
개정 파견법을 근거로 대법원은 파견노동자에 대한 기간제 근로계약 체결은 강행규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직접고용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이는 직접고용의무를 완전하게 이행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근로계약 중 기간을 정한 부분은 파견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파견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에 해당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2년을 초과한 기간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사업주는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 규정에 따라 파견근로자와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계약을 체결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원청 근로자가 대부분 기간제로 일하고 있어 파견근로자도 애초 무기계약 체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등은 예외적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특별한 사정’은 사용사업주가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방송국 MD, 파견 4년·기간제 2년 근무
1심 승소 후 2심 뒤집혀, 대법원 “법리 오해”
최씨는 아르바이트 4년·파견직 4년·기간제 2년 등 총 10년 가까이 대전방송에서 비정규직으로만 일하다가 근로계약이 종료된 노동자다. 그는 대전방송 미술실에서 2006년부터 4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전방송의 위탁업체인 A사에서 2010년 7월부터 MD 업무와 관련해 4년간 파견근로자로 일했다. 그러던 중 최씨는 2014년 7월 대전방송과 직접 1년짜리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1년 뒤 계약을 한 차례 갱신해 2016년 7월13일까지 계약 기간이 늘어났다. 최씨는 이미 파견직 MD로 4년간 일했지만, 회사는 직접고용 없이 기간제로 2년간 고용했다.
그런데 계약만료를 2주 정도 앞두고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가 날아왔다. 계약종료 하루 뒤 회사는 최씨와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했다.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초과해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나머지 편성팀의 기간제 직원들은 최씨와 비슷한 시기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최씨는 “회사의 갱신거절은 계약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을 합리적 이유 없이 침해한 행위로서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한다”며 2016년 9월 소송을 냈다. 회사는 “계약기간 만료로 근로계약이 종료된 것일 뿐, 최씨를 해고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1심은 회사의 갱신거절이 사실상 해고에 해당하고 정당한 이유가 없으므로 무효라며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MD 업무가 사업운영에 필수적인 업무인 점 등을 볼 때, 최씨가 수행하는 업무는 사업운영에 계속적으로 필요한 업무”라며 “갱신거절은 기간제법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로 행해진 것으로 보여 파견법 및 기간제법이 추구하고자 하는 고용안정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2심은 “파견근로 2년을 초과한 이후 대전방송이 최씨를 직접 고용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계약 체결 이전에 이미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성립됐다고 할 수 없다”며 1심과 정반대로 해석했다. 근로계약서에 갱신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점과 MD 업무가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2심이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근로계약 기간을 정한 경우 파견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에 관한 아무런 심리도 하지 않은 채 이 사건 근로계약에서 정한 기간이 그대로 유효하다고 전제한 다음, 갱신거절에 따라 기간만료로 종료했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불법파견 우회 ‘꼼수’ 제동 기대
노동부 ‘기간제 가능’ 행정해석 바뀔까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기간제 사용으로 파견법을 우회한 사업주 행위에 제동을 걸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불법파견이 인정된 회사가 기간제를 사용한 사례는 적지 않다. 한국철도기술원은 2016년 9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일한 파견노동자를 직접고용하는 대신 8개월 기간제로 고용한 뒤 해고해 논란이 됐다.
LG유플러스도 2년간 파견업체에서 일하다 기간제로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에게 무기계약직 전환을 약속하고도 2년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계약해지했다가 지난해 9월 1심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 한 대학병원의 간호·약무보조업무 노동자들이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시정명령에도 기간제로 전환돼 일하다 해고된 사례도 있다. 고양시 덕양구청 역시 노점단속 용역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진정을 하자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으로 전환해 비판을 샀다.
노동부는 이런 문제에 눈을 감고 되레 조장하고 있다. 노동부는 “개정 파견법에서는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의무만 부과하고 있을 뿐 고용형태에 대해서는 달리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노사 당사자 간의 합의로 무기계약 또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는 행정해석을 유지하고 있다.
최씨를 대리한 강호민 변호사(법무법인 오월)는 “개정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 이행을 위해 파견근로자를 고용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기간제로 채용하는 것은 파견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해 무효라고 본 대법원의 최초 판결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종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에 이어 의무 규정이 도입된 개정 파견법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그 취지를 살린 것”이라며 “앞으로는 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기간제로 고용한 경우 예외적인 사항에 대해 좀 더 엄격하게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